
오로지 '까는 기사’의 목적은 무엇인가?광고를 달라는 것인가? 잘못을 바로잡자는 것인가?
비판의 목적은 상대를 망신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는 데 있는것이다.
순간적인 장면까지 찾아내 조롱하고 반복적으로 공격한다면 그것은 감시인가, 흠집내기인가
기자의 힘은 누군가를 두렵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기자의 힘은 사실과 신뢰에서 나온다..
기자는 비판해야 한다. 대통령도 시장도 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잘못된 정책이 있다면 지적하고, 시민 혈세가 낭비됐다면 파헤치고, 특혜나 부당한 행정이 있다면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며 기자이다
그러나 아주 기본적인 것이 있다
‘오로지 까는 기사’의 목적을 광고를 받기위한 목적으로 이용해 글을 쓴다면 이를 사이비라 사람들은 부른다.
까는 기사의 목적은 잘못된 것을 지적해 바로잡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비판기사는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고, 왜 잘못됐는지 설명하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그래서 비판기사를 읽은 시민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행정기관은 잘못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이 언론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결론이 ‘누군가를 까는 것이 목적성 기사로 비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제가 있어서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깔 것을 찾아 다니며 기사를 쓰는 기자한명으로 인해
정론지필하는 능력있는 기자들도 한통속의 사이비 기자로 인식하게 된다
기자가 정책이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고, 본질보다 장면을 부각하고, 순간적인 행동 하나에도 조롱 섞인 자극적인 제목을 붙인다
이런 보도가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반복된다면 기자인가? 펜을든 깡패인가,
시장이 의회에서 잠시 고개를 숙인 모습을 포착했다고 하자.
실제로 장시간 잠을 자면서 회의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지적해야 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인 장면 하나라면 앞뒤 상황부터 확인해야 한다.
시장도 사람이다.
계속된 일정으로 피곤할 수도 있고 그날 몸 상태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시 눈을감은 모습을 사진에 담아 한 장만으로 사람의 태도 전체를 규정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된 취재라고 할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비판의 목적이 개선이라면 잘못이 바로잡혔을 때 언론의 목적도 상당 부분 달성된 것이다.
하지만 목적이 상대방을 계속 공격하는 것이라면 끝이 없다.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흠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판과 흠집내기의 경계는 ‘목적’과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다.
기자는 누군가를 혼내주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를 망신주는 직업도 아니다.
더구나 사람을 계속 공격해 상대가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 기자의 힘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힘은 공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실에서 나오고, 공정성에서 나오며, 시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까는 기사를 써서 이쪽저쪽 공유하며 시민에게 알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회에서 잠시 눈을 감았던 시장을 시민들에게 꼭 알려야 할 중요한 사실인가?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기 위해서 쓴 기사인가?
아니면 단지 누군가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쓴 기사인가?
만약 비판기사를 계속 쓰면서 그 결과 기관이 부담을 느끼고 본인을 의식하게 되는 것을 자신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착각이다.
더 나아가 그런 압박으로 광고를 얻기위함 이라면 잘못된 생각이다
기사는 광고를 얻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광고를 주면 우호적으로 쓰고, 광고를 주지 않으면 공격하는 언론이 있다면 언론이라 말할수 없다
기자이기에 누구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기자라면 펜을 들기 전..
‘나는 지금 무엇을 바로잡기 위해 이 기사를 쓰고 있는가.’ 를 먼저 생각해야 할것이다.
비판은 언론의 사명이맞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은 언론의 사명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