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순희 의원
한순희 의원의 수필 '호불호(好不好)' “사람을 바라보는 눈, 그 마음의 온도에 달렸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때론 첫인상과 주변의 평가에 의해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그 너머를 들여다보는 마음, 그리고 진심으로 마주하는 시간이 결국 ‘진짜 사람’을 알아보게 한다.-
경주시의회 의원이며 시인인 한순희 시인의『호불호(好不好)』는 바로 그 선입견을 넘어 진심으로 바라보는 태도의 중요함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다음은 수필 전문이다.
호불호(好不好)
긴 장마다. 앞집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장마 첫날엔 그 소리가 꽤 정겹게 들렸다.
커피 알갱이라도 갈아서 그윽한 향기를 실내에 가득 채우고 싶었다. 전화기라도 붙잡고 마음 통하는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며칠째 계속해서 퍼붓는 비는 그런 로맨틱한 감정마저도 사그라들게 했다. 뭐든 너무 지나치거나 길게 늘어지면 뒤이어 싫어질 수도 있다.
까톡.
빗소리 사이로 날아든 메시지가 나를 화들짝 깨운다. 나는 전화해 달라는 그녀의 한 문장이 너무 반가워 곧바로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까톡.
빗소리 사이로 날아든 메시지가 나를 화들짝 깨운다. 나는 전화해 달라는 그녀의 한 문장이 너무 반가워 곧바로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수화기 너머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피아노 선율처럼 깔린다. 어떤 이는 그녀를 두고 촌철살인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그녀를 ‘까도녀’라고 불렀다.
주변에서 다들 그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어찌 보면 그만큼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에 올랐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지금껏 주변에서 주워들은 얘기와는 딴판이었다. 그래서 첫눈에 더 관심 있게 주시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지금껏 주변에서 주워들은 얘기와는 딴판이었다. 그래서 첫눈에 더 관심 있게 주시했는지도 몰랐다.
저 여자는 너무 까칠해’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먼 당신이야.’
별의별 말들이 풍선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녔지만 나는 그다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커피숍에서 만나게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먼 당신이야.’
별의별 말들이 풍선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녔지만 나는 그다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커피숍에서 만나게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마음이 통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 예전에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했던 ‘선입견’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하루는 선생님이 칠판에 다짜고짜 그림을 하나 그렸다.
“이 그림이 뭐로 보이느냐?”
그렇게 물었을 때 반 친구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다.
“잔이요, 잔으로 보여요.”
“아닙니다. 선생님. 그건 여자 얼굴입니다.”
서로서로 자기 눈에 비친 그림만을 가지고 아우성쳤다.
“이 그림이 뭐로 보이느냐?”
그렇게 물었을 때 반 친구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다.
“잔이요, 잔으로 보여요.”
“아닙니다. 선생님. 그건 여자 얼굴입니다.”
서로서로 자기 눈에 비친 그림만을 가지고 아우성쳤다.
누구 답이 맞을까? 나는 속으로 궁금했지만, 큰소리로 그 친구들처럼 분명하게 짚어서 말하지 못했다. 그때 선생님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했던 말은 ‘그림에 정답은 없다. 다만 잔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그렇게 보일 것이고 여자 얼굴이라고 보이면 또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자신만의 잣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느냐’고 했었다.
그날 수업은 그게 주제였다.
그날 수업은 그게 주제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내 골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떤 대상이든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 그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대해 곱씹어봤다. 그런 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 나도 모르게 각인된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 나도 모르게 각인된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가 까칠하고 도도해서 더는 불편한 사람이 아니길. 이미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첫 이미지를 흩트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린 처음 만났다.
그냥 가볍게 커피나 한잔 나눈다는 것이 대화가 길어졌다. 얘기하면 할수록 나는 그녀에게 푹 빠져들었다. 그녀는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해 술술 풀어냈다. 그렇다고 으스대거나 자랑하는 얘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녀는 문학소녀였다. 여전히 센치한 모습이 단발머리 여고 시절을 연상케 했다.
그녀는 문학소녀였다. 여전히 센치한 모습이 단발머리 여고 시절을 연상케 했다.
가까이서 그녀를 마주하니 그녀는 가냘픈 한 떨기 난초를 닮았다. 거기다 자기 관리는 얼마나 철저했던지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군살 하나 없었다.
그날 그녀가 입고 온 단정한 프렌치 코트 하나만으로도 그녀를 충분히 대변했다.
그녀의 옷차림이 명품으로 두른 것은 절대 아니었다. 가까운 시내를 걷다 보면 쇼윈도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단정한 디자인의 블라우스에 옥빛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코트를 걸친 모습이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성심성의를 다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와 나의 대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처럼 술술 이어졌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며 시집에서 출발해 근래에 베스트셀러까지 막힘이 없었다.
그녀의 옷차림이 명품으로 두른 것은 절대 아니었다. 가까운 시내를 걷다 보면 쇼윈도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단정한 디자인의 블라우스에 옥빛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코트를 걸친 모습이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성심성의를 다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와 나의 대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처럼 술술 이어졌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며 시집에서 출발해 근래에 베스트셀러까지 막힘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얘기에 푹 빠져들었다. 오히려 어떤 말을 들으면서 내가 아주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나는 매사에 해박한 그녀가 멋져 보였다. 어제와 오늘, 별반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진부한 얘기였다면 나는 어쩌면 하품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매사에 해박한 그녀가 멋져 보였다. 어제와 오늘, 별반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진부한 얘기였다면 나는 어쩌면 하품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녀와 만나 대화한 그 시간은 한순간도 지루한 느낌이 없었다는 것.
바로 앞에서는 사탕발림처럼 달달한 얘기로 칭찬하고 돌아서서 뒷담화나 하는 엉큼한 캐릭터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별명처럼 촌철살인 하는 스타일이 훨씬 낫다. 적어도 그런 성격은 돌아서서 군말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요즘, 그녀가 준 비단향꽃무를 키운다. 이것은 유난히 꽃을 피우기가 쉽지 않았다.
바로 앞에서는 사탕발림처럼 달달한 얘기로 칭찬하고 돌아서서 뒷담화나 하는 엉큼한 캐릭터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별명처럼 촌철살인 하는 스타일이 훨씬 낫다. 적어도 그런 성격은 돌아서서 군말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요즘, 그녀가 준 비단향꽃무를 키운다. 이것은 유난히 꽃을 피우기가 쉽지 않았다.
아주 까칠한 얼굴이 예쁜 한 여자를 닮았을까. 아니면 내가 화분을 잘 키우지 못하는 손재주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데 어쩌면 그녀는 꽃도 그렇게 잘 키우는지 매번 놀라웠다.
그녀의 집 베란다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꽃향기가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뭐든 살갑게 온 마음을 쏟아붓는 그런 자세도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비쳤다.
그녀는 지금도 열심히 일한다. 뒤늦게 공부하여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취득하여 부동산 관련의 사업을 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도 열심히 일한다. 뒤늦게 공부하여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취득하여 부동산 관련의 사업을 하고 있다.
누가 뭐라든 자기의 삶에 옹골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뭐가 좋고 뭐가 싫다는 것에 정답은 없다는 지론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어쩌면 그렇게 글솜씨도 좋을까. 여기저기 문학 공모전에 응모하여 여러 번 수상했다. 까칠하게 보이든 말든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먼 당신이든 말든 내가 만난 그녀는 그 정반대였다.
오히려 나는 그녀를 통해 얻은 것이 너무 많다. 자기만의 고유한 빛깔을 지니며 자기다운 삶을 살아낸다는 것.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으랴. 누가 뭐래도 자신에 충실하며 주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은 내겐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오랜만에 구름 속에서 햇빛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긴 장마 끝에 너무나 반가운 햇빛이다. 이참에 나는 꽃집에 들러 그녀가 좋아하는 꽃이라도 한 아름 사서 안겨줘야겠다.
오히려 나는 그녀를 통해 얻은 것이 너무 많다. 자기만의 고유한 빛깔을 지니며 자기다운 삶을 살아낸다는 것.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으랴. 누가 뭐래도 자신에 충실하며 주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은 내겐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오랜만에 구름 속에서 햇빛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긴 장마 끝에 너무나 반가운 햇빛이다. 이참에 나는 꽃집에 들러 그녀가 좋아하는 꽃이라도 한 아름 사서 안겨줘야겠다.
『호불호』는 단순히 한 사람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선입견 없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중요성, 그리고 진심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사람의 깊이를 담고 있다.
한순희 시인의 수필은 삶에 대한 겸손한 성찰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통찰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호불호’라는 단어 속에 감춰진 진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주요 이력
• 학력: 경주대학교 대학원 문화재학 석사
• 문단 활동: 경북문인협회 부회장, 경주문인협회 회장 역임
• 수상 이력: 이야기&삶따라 전국 수필 공모 금상, 호미문학대전 수필 가작 등
• 저서: 『날보라』, 『햇살 닮은 옹기』
• 논문:『두산명주의 전통성과 계승방안」
현재 경주시 3선 시의원으로 활동 중인 한순희 의원은『한국수필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지역 문학과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